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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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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의 인재 양성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은 1997년 학년당 40명의 작은 규모의 의과대학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 고작 40명의 의사가 부족하여 성균관대학이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의사 양성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의사를 배출하는 것은 의과대학의 주된 사명이며 또한 가장 큰 보람이지만 왜 성균관대학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성대 의대의 교시(校是)에서 찾을 수 있다. 교시는 학교의 교육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며 우리의 교시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즉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은 인의예지가 의학자와 의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의예지는 무엇이며 왜 인의예지가 기본 덕목으로 선택되었을까?


인의예지는 맹자가 인간의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기 위해 인간이 가진 기본 덕목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인의예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원래 선(善)하다라고 그는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네개의 단서 즉 四端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각각 제시하였다. 이 내용이 무엇인지를 깊이 다루는 것은 유학(儒學)이나 한학(漢學)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다만 나는 이 글에서 이러한 맹자의 사상을 현대 의학 교육에 있어서, 특히 장구한 인문학의 전통을 가진 성균관대학에서, 어떻게 적용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펼쳐보려는 것이다.


인(仁)
먼저 맹자는 인(仁)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근거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하였다. 그리고 예를 들어 우물에 아이가 빠졌다면 누구라도 팔을 걷어 부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이는 측은지심에 의한 것이며 이로 보아 인간은 인(仁)을 가졌다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단지 곤궁에 처한 대상에 대한 정적(靜的)인 동정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것은 그 대상을 위해 나의 안위(安危)를 개의치 않는 동적(動的)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의학을 공부함과 의사가 되어감의 길에서 우리는 인(仁)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환자를 만났을 때 ‘어쩌다 저런 몹쓸 병에 걸렸나’ 하면서 혀를 차는 것은 정적이며 피상적 동정에 불과하다. 진정한 측은지심은 팔을 걷어 부치고 그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의사됨’은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된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이 어떤 원인에 의해 확률적으로 혹은 연약한 대상에게 우연히 발생한 생물학적 현상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즉 질병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진 ‘존재적 불완전성’의 결과이며 따라서 환자뿐 아니라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이 불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의사 또한 그렇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 그 사실에 아프게 공감하는 수준까지 질병 이해의 심도(深度)를 가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불완전성에 대한 공감은 기독교의 긍휼(矜恤)과 맞닿는 것이며 불교의 자비(慈悲)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불완전성 앞에서 느끼는 측은지심은 또한 아픔을 넘어 숙연함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왜 숙연함인가? 의사가 환자 앞에서 느껴야 하는 숙연함은 스스로도 불완전한 존재인 의사가 환자의 불완전성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환자를 부축하고, 업고 때로는 그 마음의 고뇌와 고통을 들어주며 그리고 마지막까지 응원하고 동행하는 역할이라는 사실 인식(認識)에 기인한 것이다. 즉 의사됨의 본질은 인생이라는 고단한 여정에서 질병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지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환자의 어쩌면 유일한 그리고 반드시 끝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이런 생각을 품는 의사를 양성하고자 한다.


의(義)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가 두번째로 제시한 덕목은 의(義)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단서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수오지심의 수(羞)는 부끄러울 수이며 오(惡)는 미워할 오이다. 우리는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영주의(陣營主義)가 판치는 상황을 목도(目睹)하였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진영을 만들어 자기 진영에 대해서는 무한 관용을, 다른 진영에 대해서는 무한 증오를 양산하는 것 말이다. 이런 진영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省察)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남에 대한 판단과 비판 혹은 비난만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의(義)의 편에 서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맹자는 의(義)의 기본이 ‘부끄러워함’에서 시작한다고 하였으며 부끄러워함을 전제로 미워함에 이른다 하였다. 여기서 부끄러워함의 대상은 자기 자신의 잘못이며 미워함의 대상은 타인의 잘못이다. 사람이 대상이 아니며 잘못이 대상이다. 나에 대한 성찰(省察)에서 시작하여 타인에 대한 권계(勸戒)에까지 이르는 것이 의(義)의 본질이다.

의학을 공부함과 의사가 되어감의 길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의학과 의사됨에 있어서 ‘무엇이 부끄러워함과 미워함의 대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인(仁)의 영역에서 다루었던 의사됨의 본질에 있다. “즉 의사됨의 본질은 인생이라는 고단한 여정에서 질병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지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환자의 어쩌면 유일한 그리고 반드시 끝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의사됨의 본질, 즉 불완전한 자로서 불완전한 자의 결핍을 메워주기 위한 동행을 다 하지 못 했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며 나의 동료가 그것을 다 하지 못 했을 때 그것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이런 생각을 품는 의사를 양성하고자 한다.


예(禮)

맹자는 인간이 예(禮)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단서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라 하였다. 흔히 ‘사양’을 ‘공손히 거절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의예지 중 예(禮)를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다른 덕목인 인, 의, 지에 비해 그 비중과 의미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해진다. 사양의 본질적인 뜻은 무엇일까? 매우 개인적인 해석이지만이는 사양(辭讓)이라는 단어와 글자 자체가 갖는 의미, 그리고 이것이 인간관계의 근본을 좌우하는 예(禮)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할 수 있다. 사양(辭讓)의 사(辭)는 말씀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인 말을 의미하는 언(言)이나 사(詞)보다 더 강하고 제한적 의미를 갖고 있어서 사직서(辭職書) 혹은 사표(辭表) 등의 단어에 사용된다. 사실 이 글자는 뜻을 가진 글자가 모여 만든 회의(會意)문자로서 어지러울 란(亂)과 매울 신(辛)이 결합된 것이다. 어지러울 란은 얽힌 실타래를 풀려는 손의 모습을 나타낸다. 매울 신자는 원래는 미각이 아니라 고통을 의미하였는데 그것은 노예에게 문신을 하던 날카로운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결합된 사(辭)는 얽히고 설킨 상황을 끊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양(讓)은 말씀 언(言)에 도울 양(襄)자가 결합되어 있는데 도울 양(襄)자는 두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소가 사람의 쟁기질을 돕는다고 할 수도 있고 소 두마리가 서로 돕는다고 할 수도 있겠으며 또한 쟁기질이 흙을 서로 섞어서 파종된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돕는다는 뜻도 되겠다. 따라서 사양(辭讓)은 얽히고 설킨 상황을 처리하여 돕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인 예(禮)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의학을 공부함과 의사가 되어감의 길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즉 사양(辭讓)이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공손히 거절함’을 넘어서는 인간관계에서 깊은 의미를 가지는 예(禮)의 핵심 요소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의학 교육에 반영해야 할까?

사양(辭讓)의 사(辭)가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이는 환자가 질병으로 인해 봉착한 육체적, 정신적, 관계적 얽힘에 대해 이를 끊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끊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처에 대해 양(讓)을 통해 회복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양(讓)은 흙을 뒤집어 엎어서 씨앗이 잘 발아(發芽)하고 자라게 한다는 의미의 도울 양(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말(言)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 말을 통해서인가? 말은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통과 공감의 방식이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맹자는 예(禮)라고 하지 않았을까?


지(智)

맹자는 인간이 지(智)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로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들었다. 지식(知識)을 의미하는 지(知)였다면 시비지심이 아니라 맞고 틀림을 의미하는 정오지심(正誤之心)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의미하는 지(知)가 아니라 지혜를 의미하는 지(智)에 관한 것이기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많은 것을 아는 능력 혹은 상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내적 기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내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 기준에 어긋난 일을 할 때에 어긋나고 있다는 내적인 목소리를 듣게 되어 그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의학을 공부함과 의사가 되어감의 범주에서 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의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많은 지식을 습득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지식은 늘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데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정말 급박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의 지식은 암기가 아니라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의사가 현실화될 시대에 인간의 학습능력이나 암기능력은 기계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 의사가 설 땅은 없어지는가? 이것이 바로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환자가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 즉 정답을 찾는 것은 인공지능이 하면 된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있어서 옳은 선택인가 하는 판단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낯선 문제를 대면하게 된다. 낙태, 안락사, 대리모, 유전자치료, 기능 증강, 생명 연장, 존엄사 등의 영역에서 무엇이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며 생명과 건강의 수호자인 의사의 본래적 사명과 부합하는가라는 문제는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라 ‘옳고 그름’ 즉 가치 판단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그 답은 모른다. 그러나 의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시(校是)인 인의예지가 무엇이며 이 덕목이 의사가 됨과 의학을 공부함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조금 더 요약하면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이 육성하고자 하는 仁義禮智的 醫師像은 다음과 같다.



인: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찰력’

의: 의사됨의 본질에 민감할 수 있는 ‘윤리의식’

예: ‘회복적 소통’을 기조로 하는 의사 환자 관계

지: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기반으로 하는 의술



이러한 교육을 하기 위해 1398년에 건립된 600년이 넘는 장구한 인문학의 산실인 성균관대학교에 1997년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우리는 이런 준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설립 27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해내고 있다라고 자부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사명의 완결점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가까워지는 수렴적(收斂的)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중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노력이 시지프스(Sisyphus)적 고행(苦行)으로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장 이주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