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저는 1976년, 의과대학 본과에 진입하면서 보건의료활동 동아리에 가입하였습니다. 학교생활 중 공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활동에 쏟으면서 소외된 인구집단의 보건의료문제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과 2학년 5월, 활동지역인 송파구 마천동에서 세균성이질 집단발병이 있어 예방의학시간에 배운 역학조사의 원칙을 따라서 전 가구에 대한 역학조사와 상수원 추적조사를 하고 미생물학교실의 도움을 받아 표본을 직접 배양하여 쉬겔라균을 동정하였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선배님들과 공동저자로 학술지에 게재된 이 논문은 저의 첫 논문이자 역학연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업 후 당시 초창기였던 가정의학을 선택하여 일차의료 수련을 받았습니다. 바쁜 수련 과정 중이지만 보건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같이 밟으면서 보건의료문제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통계와 역학적 방법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철원지역에 근무하면서 보건대학원의 지도교수이시고 한국역학회를 창설하신 김정순 교수님을 도와 렙토스피라증 역학조사를 서울대 이종구 교수와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군생활을 마치면서 당시 새로이 대두되는 직업병과 환경성질환을 전공할 생각을 굳히고 뜻이 맞는 동문과 함께 인천에 개원을 하면서 보건대학원을 다니고 산업장과 환경문제가 있는 지역을 방문하고 역학조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임상의사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포항, 경주,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직업성질환과 환경성질환, 감염병 역학조사와 자문 등으로 많은 현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였습니다. 1998년, 1년간 하버드보건대학원의 방문교수 생활을 통해 환경역학적 방법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를 직접 대면하면서 역학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5년,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만의 연구원과 연구실을 꾸리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국내에서는 환경보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이어서 국내의 환경역학분야 연구자들이 대학 소속을 넘어 같이 협업하면서 제자를 기르고 연구와 사업을 수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의 건강영향 조사를 사고 후 10여년간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국제적인 유류오염 건강영향 연구기반을 구축한 일과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에 대한 역학조사에 초기부터 참여하면서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역학자로서 중요한 과업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삼성서울병원 아토피환경보건센터를 구축하신 이상일 교수님을 도우면서 환경성질환을 연구하고 해결에 대한 접근방향을 찾는데 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요청으로 기후변화 건강영향에 대한 자문전문가로서 몽골과 파푸아뉴기니, 캄보디아, 투발루, 키리바스 지역을 방문하여 자문과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는 국내에서 기후변화건강영향에 대한 연구와 감시체계를 구축하는데 기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성균관대학교가 삼성서울병원과 협약을 맺고 의과대학을 설립한 시기에 임용된 많은 분들이 저희 세대로 이제 병원과 학교의 자리를 뛰어난 후진들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학교와 병원이 이제 한 세대를 지나 성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의 역사가 개인이 속한 지역과 공동체를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시기는 우리나라가 최빈국에서 출발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드문 행운의 시기였기에 이러한 경이로운 성장을 가능하게 한 국가와 지역사회 학교, 그리고 선배, 동료, 후진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앞날에 더욱 큰 발전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