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의학에서 기초연구는 질병의 발병과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필수적인 선행 연구를 제공한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가진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일부는 연구의 학문적 가치와 기여도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리기도 한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기초 연구에 힘쓰며 지난 1월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 표지의 주인공이신 진호경 선배님 을 만나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좋은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도에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전문연구요원이라는 대체복무 제도를 통해 박사학위 과정 중인 진호경입니다.

Q. 현재 소속되어 계신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은 어떤 곳인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은 어떤 분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인지 궁금합니다. 연구실과 주요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는 저처럼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오는 학생과 의대를 졸업 후 바로 오는 학생 그리고 의대가 아닌 다른 학부를 졸업 후 입학하는 학생들로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섞여 있습니다. 

저는 현재 카이스트 고규영 교수님 지도하에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규영 교수님께서는 카이스트 교수이시면서 동시에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이기도 하셔서 저 또한 혈관연구단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혈관연구단에서는 크게 혈관 (blood vessel)과 림프관 (lymphatic vessel) 관련 연구들로 주제를 나눠서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저는 림프액이 흐르는 림프관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혈관연구단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전공 분야의 선배님들이 계셔서 전신에 걸친 장기 특징적인 혈관 연구가 계속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머리와 목 즉 두경부 영역의 림프관 종류 및 역할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선배님께서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저 같은 경우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를 졸업하고 난 후 성균관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입학하였는데요, 그럼에도 학생일 때는 사실 연구라는 것도 잘 몰랐을뿐더러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이후에 어떠한 계기로 여러 전공 과 중에서도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로 선택에 계기가 된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가 있으셨나요?

학생 때는 막연히 수술하는 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이후 인턴을 돌기 시작하면서 신경외과랑 이비인후과 이렇게 두 과에 가장 흥미를 느꼈습니다. 수술 중에서도 좀 머리 쪽 수술을 하고 싶었던 그런 생각이 있었나 봐요.

당시 이비인후과를 돌면서 다양한 종류의 두경부 수술과 코를 통한 두개저 수술(skull base surgery)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비인후과에는 저희 성대 선배님들도 많으시고 의국 분위기도 좋아서 그래서 선택했던 부분도 컸던 것 같습니다.

Q. 선배님께서는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바로 연구를 시작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그러한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수련을 마친 후 박사과정으로 학문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나서 남자들은 보통 군의관을 가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카이스트 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카이스트 의과대학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잘 알고 있었어요. 또한 제가 카이스트 학생일 때 저희 성대의대를 졸업하시고 이비인후과 전공을 마치신 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입학하신 장전엽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면서 언제 이렇게 풀 타임으로 연구를 해볼 기회가 있겠나 싶기도 했고, 4년간 여기서 열심히 해보면 분명 얻어가는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로써는 박사과정이 끝나면 다시 펠로우로서 병원으로 복귀하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올해 발표하신 논문이 뇌척수액의 해부학적인 배출 경로와 관련된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배님께서 보내신 학창 시절이나 본과 4학년 때 해부학 선택 실습을 하신 것이 현재 연구하시는 분야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었을까요?

제 논문이 크게 두 파트죠. 앞에는 해부학 파트고 두 번째는 기능적 파트입니다.

제가 학생 때 해부학 성적이 좋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해부학이 되게 재밌었고 해부학 실습도 재밌었어요. 아까 학생 때부터 외과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해부학 실습의 영향도 받은 것 같습니다. 해부학이 재미있어서 본과 4학년 때는 일렉티브 과정으로 해부학 교실 오창석 교수님 지도하에 여러 실습도 했었습니다.

당연히 학생 때 쌓은 그런 지식은 연구할 때 되어서는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다시 그 교과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니까 예전에 배웠던 것들이 금방 기억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또 이비인후과 수련 중에 추가로 공부한 두경부 해부학도 제 논문 주제와 깊이 관련된 부분이라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Q. 선배님께서는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에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연구를 하기 전에 임상의사로서 근무한 것이 연구 주제 선택이나 진행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삼성서울병원은 비강 내시경을 통한 두개저 수술(skull base surgery)을 굉장히 많이 하는 병원이에요. 수술의 큰 합병증 중의 하나가 뇌척수액 누출 (CSF leakage)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고규영 교수님 연구실에서 2019년도에 CSF 배출 경로에 대한 논문이 하나 나왔었고 전공의일 때 이 논문을 보고 이 연구실로 오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임상의사를 하며 두경부 해부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키웠고 CSF라는 키워드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런 관심사를 접목하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Q. 학술지 “Nature”에 선배님의 논문이 실리며 2024년 1월호 표지까지 장식했습니다. 신경퇴행성 질환 발병과 관련된 뇌척수액의 배출 경로 중 뇌척수액이 경부 림프절로 배출되기 위해 비인두 림프관망으로 모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독자들을 위해 연구하신 분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뇌척수액 배액 (CSF drainage)는 중추신경계의 항상성 (homeostasis) 유지에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다양한 신경퇴행성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뇌척수액을 통한 중추신경계의 다양한 노폐물 배출은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뇌척수액 배출 경로에 관한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사실 뇌척수액 배출 경로 연구는 1800년대부터 진행된 분야인데 아쉽게도 그 경로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특히 두개골 안에서 바깥으로 뇌척수액이 어떤 경로로 빠져나오고 두개골 바깥의 배출 경로는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뇌척수액 배출 기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여러 위험성이 있는 두개골 안이 아닌 바깥에서 조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문이 다소 복잡할 수 있지만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단어는 비인두 림프관입니다. 비인두 림프관은 두개골 안쪽에서부터 이어지는 직접적인 경로를 통해 뇌척수액을 직접 받아들이고 이후 이를 경부림프절로 내려보내 주는 허브로서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로는 노화에 의한 변화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비인두 림프관의 퇴화가 관찰되었으며 비인두 림프관 하위에 존재하는 경부 림프관은 구조적 및 기능적으로 비교적 정상 상태를 유지합니다.

세 번째로는 두개골 밖에서의 뇌척수액 배출 조절입니다. 노화 과정에서 비교적 정상 기능을 유지하는 경부 림프관의 펌프 기능을 향상함으로써 뇌척수액 배출량을 두개골 밖에서 조절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Q.  Nature 학술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Science, Cell과 함께 세계 3대 학술지로 불리는 종합 과학 저널인데 선배님의 논문이 승인되었을 때의 소감이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약 2년 정도를 같은 연구단의 윤진희 박사님과 함께 연구에 매진한 것 같은데 이메일로 승인 편지를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쁨과 동시에 ‘드디어 쉬겠다.’라는 안도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커버에 제가 직접 프랩해서 컨포칼 현미경으로 촬영한 이미지가 선정되었을 때 역시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20번, 30번 정도 해부하여 겨우 얻은 이미지였는데 이것이 커버 이미지로 선정되어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좋은 논문을 쓰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무엇인가요?

저는 지금 4년 차 박사 과정 학생인데 제 수준에서 말씀을 드리면 일단 어떤 질문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먼저 첫 질문은 가능하면 단순하고 광범위하게 두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딱 하나의 좁은 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시작하게 되면, 그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길을 잃는 위험이 높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첫 질문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두개강 밖 (extracranial space)의 뇌척수액 경로를 찾아보자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질문을 실험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험 과정이 너무 복잡할 것 같거나 불가능할 것 같아서 아예 구현을 안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를 보면, 경부 림프절에서 비인두 림프관을 쭉 따라 올라가 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처음에는 무척 막막했지만 일단 실험을 시작하고 나니 여러 시행착오를 하면서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방향성이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협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최근 바이오 연구에서 요구되는 데이터의 양이 워낙 많고 필요한 스킬도 많이 세분화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높은 수준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연구 스토리에 어떤 분야의 실험이나 의견이 꼭 필요한데 잘 모르겠다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서 의견을 구하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하고 계시는 연구를 더 확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계신 분야 혹은 영역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는 생쥐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최소한 영장류나 아니면 사람한테까지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은 1년 동안은 국가영장류센터에서 영장류 실험을 계속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제가 이번에 밝힌 경로는 심경부 영역인데 천경부 영역에서의 뇌척수액 경로를 어떠한지 또 이를 통한 좀 더 접근성이 우수한 치료 방법들은 없을지 계속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배님은 연구의 융합과 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연구 주제를 선택할 때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대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선배님의 따뜻한 마음과 연구를 향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담당기자: M2 정서연,  M4 정승연